시시도 료, 짓궂은 장난
짓궂은 장난
테니스의 왕자
시시도 료 드림
드림 전력「당신의 수호천사」
마키 카온
시계탑 아래에서 시시도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곧 올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시험 때문에 바빠 도통 마키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터라 오랜만의 데이트에 들떠 조금 일찍 나온 차였다. 아직 약속 시각까지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애도 아니고. 두근거리는 마음에 시시도는 볼을 긁적이며 잠시 시계를 쳐다보았다.
“있죠, 거기 오빠.”
시시도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한껏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시시도의 귓가를 찔렀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시시도는 휴대폰 게임을 켰다.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손길에 시시도가 고개를 돌렸다. 웬 여자가 시시도를 보며 웃고 있었다.
“오빠, 내 취향인데. 전화번호 알려줄 수 있어요?”
시시도는 미간을 좁혔다. 이건 뭐하는 여자야. 긴 가죽 부츠에 짧은 치마, 꽤 추운 날씨에도 몸매를 드러내는 상의에 굵은 펌이 들어간 웨이브 머리. 무엇보다 코를 괴롭히는 향수 냄새가 거슬렸다.
“여자 친구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미간을 찌푸린 건 실례다 싶어 시시도는 담백하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달큰한 향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자가 다시 시시도의 손목을 잡아왔다.
“오빠, 나도 꽤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시시도는 밀려오는 짜증에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제 여자 친구가 훨씬 괜찮은 사람이라서. 이만. 마키에게는 다른 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시도가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가 다시 시시도 앞에 섰다.
“후우, 오빠. 정말 나랑 같이 놀 생각 없어요?”
“미안한데, 다른 사람 알아보지 그래요?”
곧 여자 친구 올 건데, 그 녀석이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건 싫어서. 시시도는 결국 대놓고 찡그리며 여자를 비켜 지나쳤다. 이제는 따라오지 않는 기색이었다. 어디 카페라도 가 있어야 하나. 시시도가 근처의 지리를 짚어보던 차에, 벨이 울렸다. 휴대폰에 떠오른 연인의 이름에 하향곡선을 그리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 료, 어디야?
나 지금 도착했는데. 마키의 말에 아차 싶었던 시시도가 미간을 좁혔다. 마키와 길이 엇갈린 모양이었다. 시시도는 한숨을 쉬며 돌아가기로 했다. 여자도 쫓아오지 않는 걸 보면 떨어져 나간 모양이니, 마키를 굳이 움직이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마주치면 골치 아프겠지만.
“응, 거의 다 왔어.”
시시도가 다시 시계탑으로 돌아갔을 때, 멀리 보이는 것은 아까 그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저 여자는 왜 아직도 저기 있는 거야. 마키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시시도가 돌아선 여자와 마주쳤다. 여자는 생긋 웃으며 휴대폰을 흔들었다. 시시도의 눈이 커다래졌다.
“―!?!?”
조금 먼 거리였지만, 흔들리는 휴대폰에는 시시도가 지난번에 마키에게 선물해준 작은 인형이 달려 있었다. 여자가 웃으며 시시도에게 다가왔다.
“오빠, 진짜로 나랑 놀 생각 없어요?”
여자, 아니 마키가 진짜 제 목소리로 시시도에게 말을 걸었다. 시시도는 놀라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시시도가 소리를 빽 질렀다. 카온!!!! 마키는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와, 근데 진짜 못 알아볼 줄 몰랐어.”
“뭐야, 이건.”
시시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의 마키와는 전혀 달랐다. 아까의 목소리도 그랬고, 옷차림도 그렇고, 머리도.
“그냥, 조금. 오랜만에 만난 김에 장난?”
“만우절도 아니고 무슨…….”
뭐냐, 그 목소리는. 시시도의 말에 마키가 웃더니 다시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아아, 이거? 콧소리가 섞인 하이톤의 목소리에 시시도가 얼이 빠졌다.
“니오 군이 나 목소리 바꾸는 거 하난 잘한댔다?”
“야, 너 그거랑 다니지 말랬지!”
“사람한테 그게 뭐야, 그게.”
혹시나 싶더라니 역시나였다. 시시도와 마키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함께 다녔지만, 대학은 서로 갈라졌다. 대학 동기 중에 그 ‘니오 마사하루’가 있다고 마키가 신기하게 얘기했을 때, 시시도는 그 녀석과 다녀 좋을 것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테니스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보니 두 사람은 제법 친해진 모양이었다. 마키의 마음이 저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별로 불안하지야 않았지만, 태생적으로 진지한 편인 시시도는 가벼운 편인 니오와는 그닥 맞지 않았다. 마키도 시시도와 비슷한 쪽이라 그 니오와 그렇게 친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제 앞에서 생글생글 웃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의 여자친구를 보며 시시도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무슨 의도의 장난인데?”
“시시도 군이, 헌팅녀에게 넘어가는가?”
아, 참고로 난 안 넘어간다에 걸었으니까. 시시도는 어쩐지 놀림감이 된 기분에 마키의 손목을 끌어당겨 생글생글 웃고 있는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덮어버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거리는 것이, 그제야 제가 아는 마키와 겹쳐 보였다. 평소와는 다른 향수 냄새가 시시도의 코를 괴롭혔지만, 마키라는 것을 알고 나니 아무래도 좋았다. 마키도 생긋 웃으며 시시도의 노크에 응했다.
“뭘 어떻게 해도 다른 여자 볼 일 없으니까.”
“응, 알고 있어.”
마키가 시시도에게 매달리며 미소 지었다. 잠시 마키를 떼어 마주 본 시시도는 연인 코트를 제대로 여며주며 제 목도리를 마키에게 둘러서 드러난 살을 덮어버렸다.
“오늘 그거 벗지 마.”
시시도의 뚱한 목소리에 마키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실내에서도. 시시도의 목소리에 마키가 눈을 깜빡거렸다.
“잠깐, 저기요, 시시도 씨……?”
나 금방 더위 타는 거 알잖아?? 마키의 말에도 시시도는 목도리를 꽁꽁 매줄 뿐이었다. 슬쩍 울상이 된 얼굴이 완전히 평소의 마키로 돌아와 있어서, 그제야 시시도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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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지 여자친구를 못알아보나 싶지만
마키는 평소 안경을 쓰고 다니고, 니오의 변장술은 대단하니까요!
왜 이런게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는데...
뒤로 갈수록 어라 싶으면서도 일단 지른 건 수습해보려고 수습을... 수습이 됐...나?
어마무지 대지각이...
그래도 간만에 전력 참여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ㅠ0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