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도 료, 변명
변명
테니스의 왕자
시시도 료 드림
드림 전력「당신의 수호천사」
마키 카온
“으아―!! 카온, 미안!”
“…….”
마키는 제 앞에서 양손을 모아 붙이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연인을 내려다보았다. 연락도 없이 약속 시각에서 30분이나 지각. 평소 약속 시각을 어기는 법이 없는 이인지라 곧 오겠지, 곧 오겠지, 하며 밖에서 기다렸더니 손끝이 차가웠다. 혹시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싶어 전화도 몇 번이나 했다. 한참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어디 다치거나 하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뭔가, 변명이라도 해봐.”
그렇다고 연락도 없이 30분이나 기다리게 한 건 너무했다. 늦을 것 같다고 얘기했으면 어디 들어가 있기라도 했을 텐데. 마키는 괘씸한 기분에 팔짱을 단단히 끼고 시시도를 아래로 흘겨보았다.
“그게, 말이지―.”
천천히 고개를 든 시시도가 뭔가 얘기하기 께름칙한 듯 잠시 주저했다. 그답지 않은 태도에 의아했던 마키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눈을 깜빡이며 저를 쳐다보는 연인에게, 시시도는 우물쭈물 제가 늦은 이유에 대해 고하기 시작했다. 마키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아내야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한숨이 나오는 것만은 자제할 수 없었다.
“…너란 애는.”
“미안, 정말 미안.”
시시도는 정말 미안한 듯 여러 번 고개 숙여 사죄했다. 사건의 전모란 그랬다. 이제 입시가 거의 끝날 시즌, 마키와 시시도도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였다. 마냥 전화기만 붙들고 있는 것도 초조하기만 할 뿐이니 실로 오랜만에 데이트나 하고자 약속을 잡은 것이 오늘이었고, 오랜만의 데이트라 시시도도 제법 빨리 집을 나선 것까지는 좋았다. 거기까지는.
“그야 테니스도 오래 못 치기야 했겠지만―.”
추운 날인데도 드물게 스트리트 코트에서 공이 오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여유 시간을 확인하고 잠시 들렀던 것이 문제였다. 거기에서 저를 알아본 이들의 꼬임에 결국 꺾여버렸다는 것이었다. 라켓도 빌려준다고 했고, 일찍 나왔으니까, 짧게 한 판 정도는 괜찮겠지― 했던 것이 어느새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고.
정말, 어디까지 테니스 바보여야지 성이 풀리는 걸까. 한숨 섞인 마키의 말에 시시도는 정말 면목없는 듯 눈썹을 축 늘어뜨린 채 마키를 쳐다보았다.
“휴대폰은?”
“겉옷이랑 같이 던져두……헉.”
겉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낸 시시도가 액정을 보고 재차 말을 잃었다. 마키는 자신이 그에게 전화했던 횟수를 머릿속으로 헤아려보았다. 약속 시각에서 10분이 지난 시점부터, 5번은 넘게 했던 것 같았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몇 번이고 했다. 지금 들어본 바로는 별로 걱정할 일도 아니었지만. 얼굴이 창백해진 시시도가 다시 한 번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
이걸 어쩌면 좋을까…. 아까부터 몇 번째인지 모를 시시도의 정수리를 빤히 쳐다보던 마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이겼어?”
“……그.”
“이겼어?”
마키의 재촉에 주저하던 시시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 같았으면, 이렇게 말을 돌렸을 때 바로 신나서 테니스 얘기를 했을 텐데, 그래도 3년 넘게 사귀었다고 사람이 변하긴 하는구나. 제 기분을 살피는 것이 여실한 시시도를 보며 마키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겼으면 됐고.
“이따 밥이나 사.”
“카온…?”
잔뜩 화내며 집에 돌아가겠다고 할 것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시도가 얼떨떨하게 마키의 이름을 불렀다.
“네가 테니스 바보인 게 하루 이틀이니?”
그리고 그런 시시도이기에 반했다. 수험 때문에 제대로 데이트를 못 한 만큼, 테니스도 못 쳤을 테니까. 혹할 만도 했겠지. 새까맣게 잊었다는 게 얄미웠지만. 이 겨울에 땀까지 흘리며 뛰어온 시시도를 보고 있자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 손 시리니까 손이나 잡아주고.”
마키는 계속 끼고 있던 팔짱을 풀어 시시도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시시도가 손을 잡더니 얼음장 같은 손에 놀라 마키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장갑 같은 거 잘 안 끼는 타입이었지. 제 여자 친구의 평소 모습을 떠올린 시시도는 다시 한 번 면목 없음을 느끼며 제 코트 주머니에 마키의 손을 넣었다.
“정말 미안.”
“됐어. 미안하면 다음에 테니스 치는 거나 보여줘.”
나도 료 테니스 치는 거 못 본 지 한참 됐단 말야. 솔직히 시시도가 테니스를 치다 늦었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이었다. 지난여름 이후, 라켓을 들고 코트를 누비는 시시도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기다리게 했단 건 화가 났지만, 역시 연인의 가장 멋진 모습을 놓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마키의 말에 시시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얽어왔다. 방금까지 뛰어서 그런지, 이 날씨치고 제법 따뜻한 시시도의 손이 차갑게 식은 마키의 손을 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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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역시 테니스 바보 좋네요.
복구 이전의 글까지 해서 (넘버링상)100번째 글입니다.
티스토리 이전의 글도 있고, 원고도 있고, 공개되지 않은 글들도 있고,
중간에 -2로 넘버 하나로 글 두 개를 쓴 적도 있었고, 뭐 여러가지로 해서
완벽하게 100번째는 아니지만, 넘버링으로는 100번이니까.
기념적인 넘버라 시시도로 해야지, 해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나도 절찬 하이케이덴스 중이라...
그래도 정작 쓰기 시작하니까 술술 써지는 게 역시 10년차 최애는 다르네요.
시시도 료 좋아해!!!!
뭐, 외부적으로는 좀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현타도 오고...
드림 뭐하러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일단은 앞으로도 열심히, 취미생활을 지속해나갈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