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弱虫

[신이즈] 졸업식 for.낙님

Celestyn_ 2017. 3. 13. 02:45

겁쟁이 페달

신카이 하야토 x 이즈미다 토이치로





졸업식







봄으로 향하는 문턱. 성미 급한 이들은 벌써 드문드문 옅은 분홍빛 꽃망울을 피워냈지만,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2월 말. 이별은 찾아왔다.



당당하게 단상에 선 것은 이즈미다 토이치로, 자전거부 신 주장. 오늘은 자전거부가 아닌, 하코네 재학생들의 대표로 단상 위에 섰다. 이즈미다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뒤 부드럽게 입술을 벌렸다. 무대 아래에서 각고의 노력을 한 덕에 목소리는 습기 하나 없이 건조하고 밝았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도 누그러지고 서서히 봄의…….”


낭랑한 이즈미다의 목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선배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오는 이는 정해져 있었다. 이즈미다가 줄곧 동경하고, 은애해온 사람.

신카이에게 시선이 닿자 겨우겨우 억눌러왔던 감정이 울컥 덩어리져 올라왔다. 침착하게 그것을 잡아 끌어내린 이즈미다는 애써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하지만 흘러넘치려는 감정을 겨우겨우 추스르며 한 마디 한 마디를 이어온 이즈미다에게는 제법 길었던 송사가 끝이 났다. 있는 힘껏 미소를 끌어내고 고개를 숙였지만, 마지막만큼은 제대로 웃었는지 자신이 없었다. 신카이와 눈을 마주쳐 버렸으니까. 단상에서 내려온 이즈미다는 쿠로다와 아시키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쿠로다는 이즈미다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수고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세 사람은 자연스레 자전거부로 향했다. 중간에 결국 이즈미다가 여린 눈물을 터트린 바람에 눈시울이 약간 붉었다. 눈이 빨간 것은 아시키바도 마찬가지였다. 이즈미다의 눈물이 기폭제가 되어 아시키바가 서럽게도 울어버리는 바람에, 잠시 소동이 일기도 했다.


"아시키바!"


너는 무슨 니가 졸업하는 것도 아니고 선배들보다 크게 우냐?? 짜식이, 너 우는 소리 땜에 내가 다 서럽더라. 3학년 선배들의 타박에 아시키바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게, 토ㅉ, 악!!!!

짝, 하는 차진 소리와 함께 아시키바가 허리를 꺾었다. 

하하, 아시키바도. 이즈미다의 돌발 행동에 이쪽을 보지 않던 이들의 시선까지 이쪽으로 모였다. 아시키바는 이즈미다의 손바닥이 닿은 허리를 문지르며 서러운 눈으로 이즈미다를 보았으나, 이즈미다는 애써 외면했다. 쿠로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구 레귤러 멤버 넷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이는 아라키타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라키타도 아시키바에게 한마디 핀잔을 건넸지만, 아시키바는 이번엔 입을 열지 못했다. 이즈미다의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에 아시키바는 억울한 기색으로 입을 닫았다. 평소 근육 트레이닝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즈미다의 손힘은 무시할 수 없어서, 아까 맞은 등이 아직도 홧홧할 정도로 매웠다.

가장 늦은 것은 토도로, 이유는 당연하게도 토도를 둘러싸고 눈물을 터트리는 여자아이들 때문이었다. 아라키타가 인상을 찌푸리긴 했으나, 날이 날인지라 비교적 시끄럽지 않게 넘어갔다.


괜히 바닥의 모래에 신발을 문지르며, 이즈미다는 서 있었다. 쿠로다가 아닌 척 아라키타에게 달려간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신카이와 같은 교정을 밟는 것도, 같은 교복을 입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 은퇴하고도 가끔 부에 들러줬지만, 그것도 이제 더는 없을 일이었다. 단상 위에서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던 감정은 이제 덩어리져서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토이치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이즈미다가 시선을 돌렸다. 상냥한 푸른빛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즈미다는 꾹 물고 있던 입술을 열었다.


“신카이 상.”


신카이가 다가와 이즈미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재학생 대표, 수고했어. 신카이의 말에 다시 뭉쳐 굴러다니던 감정이 울컥 올라오려는 것을 눌렀다. 감사, 합니다. 신카이 상. 신카이의 팔이 풀어지고, 뜨겁게까지 느껴지던 체온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 이즈미다가 신카이의 소맷자락을 붙들었다. 토이치로? 여전히 가깝게 붙어 있었던 탓에 신카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즈미다는 어젯밤부터 고민하던 것을 입에 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신카이 상, 잠시…….”


이즈미다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가득 담겨 있었고, 신카이는 흔쾌히 그를 따랐다. 잠시 몇몇 시선이 두 사람에게 머물렀으나, 이즈미다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신카이는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부실 건물 뒤쪽, 아무도 없는 곳에 두 사람은 마주 섰다. 신카이는 빙그레 미소를 띤 채 이즈미다를 응시했다. 그의 입이 열릴 때까지 아무런 재촉도 하지 않겠다는 듯. 이즈미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미 여기까지 질러버린 이상, 그냥 밀어붙이는 수밖에.


“저어, 시, 신카이 상.”

“음.”

“다, 단추, 하나만 주실 수 있나요!?”


긴장에 목소리가 제멋대로 높아졌다. 빽, 고음을 내고 만 이즈미다가 붉어지려는 얼굴을 숨기려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단추? 신카이의 목소리에 놀람이 녹아 있었다.


“그, 구식이란 건 알고 있는데, 올해는 신카이 상의 4번을 지고 달릴, 거니까―”


이즈미다가 횡설수설 말을 얼버무렸다. 교복 단추라니. 일단 하코가쿠는 가쿠란이 아니라 블레이저 타입이란 점도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의 단추 교환 같은 건 이미 역사의 뒤쪽으로 사라져가는 풍습 같은 것이었다. 그걸 나타내듯, 여자아이들에게 빙 둘러싸였던 토도조차도 교복 단추는 전부 멀쩡하게 제자리에 붙어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즈미다는 뭔가 남기고 싶었다. 신카이의 상징 같은. 신카이의 침묵이 이어지며 이즈미다는 도망가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후쿠토미에게 자전거부 주장을 이어받은 뒤, 꽤 늠름한 부장이 되지 않았나 했는데, 신카이의 앞에서는, 특히 지금 이 순간은 그를 처음 만났던 어린 자신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뚝, 뭔가를 잡아 뜯는 소리에 이즈미다가 고개를 들자 신카이가 교복 아랫단을 잡고 있었다. 블레이저 깃이 끝나는 지점에 단추가 달려있어야 할 곳이 휑했다.


“신카이, 상……?”

“잠깐만. 가위가 없어서 뜯고 있는데 생각보다 잘 안 떨어지네.”


하나면, 충분해요! 이즈미다가 신카이를 만류했으나 동시에 두 번째 단추가 떨어졌다. 신카이는 두 개 다 이즈미다의 손에 쥐여줬다. 신카이가 쥐고 있던 단추가 따끈따끈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 대신 나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신카이가 씨익 웃었다. 이즈미다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신카이를 쳐다보았다. 신카이가 손가락을 뻗어 이즈미다의 명치 아래를 꾹 찔렀다. 딱, 단추가 달린 위치였다. 나도 하나 줄래, 그거? 하나면 되는데. 이즈미다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카이의 단추를 안주머니에 곱게 넣은 뒤, 위쪽의 단추를 거침없이 뜯어냈다. 그것을 받아든 신카이는 이즈미다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레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 거 두 개 줬으니까, 빈자리는 그걸로 채워둬.”


그럼 갈까. 신카이는 이즈미다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고 뗀 뒤, 슬렁슬렁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굳어 있던 이즈미다가 신카이의 뒤를 조르르 따랐다. 두 사람의 얼굴에 저마다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날 저녁, 이즈미다가 블레이저의 빈자리에 꼼꼼하게 단추를 새로 단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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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의 웹연성인지.(웹배포 제외)

사실 낙님의 리퀘스트는... 졸업레이스 직후였는데... 우짜다가... 이렇게... 졸업식이....

최근에 우에쨩 세대가 단추 주고받기의 끝자락 세대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탓인가...

암튼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괜찮은지 모르겠으나 일단 멋대로 드리고 도망치기로(낙님:이사람이

신카이... 어려운 남자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