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테니스의 왕자 오오토리 쵸타로 드림
* 시시도 드림주가 예고없이 튀어나옵니다.
아마노 테루
슬슬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 봄의 기운이 고개를 내미는 시기. 3학기 말의 화이트데이가 다가오면 오오토리는 바빠졌다. 그의 파트너인 시시도가 말을 빌리자면 쓸데없이 성실한 오오토리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이자 생일인 그 날, 생일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받은 상당량의 초콜릿에 대한 화이트데이 답례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시시도는 참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타박을 했고 아쿠타가와는 자신도 사탕을 달라며 웃는 얼굴로 졸랐다. 무카히는 시시도의 말에 동조하다가 금세 아쿠타가와의 말에 나도 빼먹지는 않겠지? 하며 기대를 내비쳐 오오토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오오토리를 보면서 화를 내는 사람이 있었다.
“오오토리 쵸타로 바보 멍청이!!”
“어이, 카온...”
3-C반, 이미 수험도 모두 끝난 데다가 대부분이 내부진학이었기 때문에 반은 느른하게 풀려있었다. 졸업여행도 다녀왔겠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 졸업식뿐이었던 터라 다들 제각각 떠들거나 잠을 자는 등 제 일을 하는 와중 마키의 외침이 반을 울렸다. 잠시 시선이 쏠렸지만 워낙 시끄러운 분위기였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은 곧 다시 자기가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여전히 마키를 보고 있는 것은 건너편에서 잡지를 넘기던 시시도와 조금 부루퉁하게 자리에 앉아있던 아마노 뿐이었다.
“여기 여자 친구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다른 여자들한테 사탕??? 작년이야 둘이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문제없었다고 쳐도, 올해는 이러면 안 되지!”
이야기의 시작은 마키가 시시도에게 화이트데이 잊지 말라고 장난스레 얘기하면서부터였다. 시시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오오토리 때문에라도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영문 모를 그의 말에 마키는 무슨 일 있느냐며 물었고, 시시도는 별생각 없이 오오토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얘기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옆에서 듣고 있던 아마노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마키는 분노했다. 시시도는 본인이 던진 얘기에 일이 커진 듯하자 보던 잡지도 덮고 두 사람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야 쵸타로 녀석은 기본적으로 만인에게 상냥하니까...”
“그래도 그건 아니야!”
시시도는 나름 자신이 일을 쳤다는 자각이 있었는지 열심히 자신의 파트너를 변호하려 했으나 그것은 마키의 선에서 전부 차단당했다. 마키의 반박에 시시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테루, 오오토리군 어떻게 할 거야???”
화는 났지만 엄연히 연인사이의 일. 마키가 간섭할 영역이 아닌지라 한참을 분노하던 마키는 앞자리의 아마노에게 물었다.
“......일단 두고 볼래.”
아마노의 목소리에도 화가 실려 있어서 시시도는 속으로만 자신의 파트너에게 닿지 않을 사과를 빌었다. 힘내라, 쵸타로...
화이트데이 당일이 되고, 오오토리는 준비한 사탕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다. 어떻게 용케 기억하는지 3학년과 1학년 교실까지 돌아다니는 모습이 소문이 날 정도였음에도 3-C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키를 더 화나게 만들었지만, 일단 제 파트너를 생각한 시시도의 만류로 오오토리를 직접 찾아가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노도 어쩔 수 없이 화가 났는지 학교에 있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고, 그런 아마노와 마키 사이에 있는 시시도만 죽을 맛이었다. 아쿠타가와도 같은 반이고 시시도의 앞자리였지만 요즘 그가 하는 일이라곤 아침에 와서 자고, 점심을 먹고, 또 자는 일뿐이었기 때문에 고통받는 것은 시시도 뿐이었다.
학교 일과가 끝나고 방과 후가 될 때까지 오오토리는 3-C에는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아마노의 화를 더 북돋았지만 아마노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from. 쵸타로]
[sub. 선배]
[오늘 같이 하교해요.
반으로 갈게요.]
아마노는 점심 무렵에 오오토리에게 온 문자를 빤히 바라보며 눈에 힘을 줬다. 쵸타로 바보, 멍청이!! 속으로는 수십 번이고 외친 말이었지만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고 마키와 시시도를 보내고 자리에 앉아 끓는 속을 다스렸다.
“테루 선배!”
아마노는 빈 교실에 앉아 문자창만 노려보고 있었다. 눈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울면 지는 것 같아 눈물을 꾹 참고 있었는데 앞문이 열리며 조금 숨이 차 보이는 오오토리가 들어왔다.
“죄송해요. 잠깐 부실에 다녀오느라...”
오오토리가 미안한 얼굴로 사과했지만 아마노는 여전히 그를 보지 않고 핸드폰만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 자신이 연상인데, 왜 오오토리와 있으면 어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아마노는 분한 기분이 들었다.
“......선배?”
오오토리가 아마노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인지했는지 조심스레 아마노에게 다가왔다. 책상에 손을 짚고 허리를 숙이자 아마노의 표정이 제대로 보였다. 어딘가 불만이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얼굴. 뭔가가 가득 쌓인 얼굴. 짜증과 화가 섞여 있으면서 어디가 분한 얼굴.
“선배, 저한테 화나셨어요?”
이런 류의 감정에는 둔한 면이 있는 제 파트너와는 달리 오오토리는 민감하게 아마노의 현재 상태를 파악해냈다. 거기까지 들은 아마노는 폭발해버렸다. 알고 있으면서...!!
“쵸타로, 우리 사귀는 사이 맞지?”
“네, 물론이죠.”
오오토리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아마노의 감정이 격양되었다.
“그런데 왜, 오늘 종일 찾아오지 않았어?”
평소에도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매일 같이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경우가 달랐다. 며칠 전의 시시도의 말 때문에 오늘 오오토리의 동선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아마노는 오늘 오오토리가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동선 안에 자신의 반이 빠져 있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째서, 왜. 물론 다른 여자아이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도 싫었다. 그 애들과는 달리, 자신은 그의 여자친구였으니까. 하지만 그 여자친구도 아닌, 그저 같은 학교 여학생들이 사탕을 받는 사이 아마노가 받은 것은 문자 메시지 하나였다.
오오토리가 아마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를 덥석 껴안았다. 불안하게 만들어서, 화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오오토리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마노의 귓가를 간질였다. 아마노의 눈에는 울컥 눈물이 고였다. 오오토리가 아마노의 등을 도닥였다. 부드러운 손길에 아마노는 겨우겨우 고여 있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말았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오오토리는 가만가만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두 사람이 떨어진 것은 그로부터 십분 가량이 흐르고 나서였다. 오오토리의 블레이저가 눈물에 젖어 약간 짙은 색이 되어 있었지만 두 사람 다 신경 쓰지 않았다. 오오토리는 손수건을 꺼내 직접 아마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래도 선배가 울면, 내가 너무 속상하니까. 울지 말아줘요. 오오토리의 말에 아마노가 화를 냈다.
“지금 이게 누구 때문인데!!”
유치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러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몇 번이고 말을 걸었다. 치사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계속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흔하게 주고 돌아다닌 사탕을, 저는 받지 못했다는 것이 그녀의 화를 돋웠다.
“선배.”
오오토리가 그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사탕 다발과 함께 건넨 그것은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팬던트가 달린, 은목걸이였다. 아마노가 얼결에 사탕 다발을 받고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오오토리가 빠르게 목 뒤로 손을 둘러 펜던트를 걸어주었다. 쵸타로, 뭐해? 아마노는 빨간 눈으로 멍하니 입술만 움직였다.
“학교에서는 반지 못 하잖아요. 그러니까 커플 목걸이에요.”
오오토리가 제 와이셔츠 안쪽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언제나 하고 다니는 은십자가의 목걸이. 그 은십자가 옆에 아마노의 목에 걸린 것과 같은 높은음자리표가 있었다.
“선배, 너무너무 좋아해요.”
오오토리가 그대로 아마노에게 다가왔다. 이마에 짧게 입 맞추고,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오오토리를 아마노가 잡아 멈췄다. 잠깐. 아마노의 말에 오오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명은 안 할 거야?”
왜 오늘 종일 3-C에 오지 않았는지. 어째서 오오토리에게 사탕을 받은 수많은 여자아이들 중에 여자친구인 자신이 마지막이었는지. 묻고 싶은 것은 잔뜩 있었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게, 마지막이었어요.”
잠시 뭐라고 해야 할지 말을 고르는 것 같던 오오토리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
“올해 밸런타인데이 이후로 선배랑 사귀게 됐으니까, 전까지 받은 건 다 답례를 했어요. 하지만 이제 더는 받을 수 없다는 쪽지도 함께요.”
오오토리는 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쏙 꺼내어 보여주었다. 수려한 글씨체로 오오토리가 말한 것이 쓰여 있었다.
“이제 저한테는 선배가 있으니까.”
밸런타인에는 선배가 주는 것만 있으면 되고, 화이트데이에는 선배한테만 주면 돼요. 받아주실 거죠? 오오토리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아마노를 쳐다보았다. 아마노는 온종일, 아니 얼마 전부터 마음 졸이던 것이 괜히 허탈해 발돋움을 해 오오토리의 이마에 제 이마를 부딪쳤다. 왠지 오오토리가 얄미웠다.
“몰라, 바보 쵸타로.”
“정말 정말 좋아해요, 선배.”
그녀의 답이 거절이 아니라는 걸 알아챈 오오토리가 생글생글 웃었다.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여 조금 전 실패했던 입맞춤을 조심스레 시도해왔다. 두 사람의 온기가 조심스레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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