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弱虫

아라키타 야스토모, 첫 데이트

Celestyn_ 2018. 4. 8. 00:13

첫 데이트

아라키타 야스토모 드림

겁쟁이 페달

<전력 드림 60분 * 너의 빨강구두>





마키 카온





  거리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라키타는 두툼하게 챙겨 입은 옷을 다시 한 번 여미며 시계를 보았다. 약속 시각 까지 20분, 대체로 아슬아슬하게 나오는 아라키타의 성향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시각이었다. 통한의 인터하이가 끝나고, 로드 시즌도 완전히 종료해 얼마 전에 하코네의 부원들은 은퇴 주행회를 마쳤다. 자전거 경기부 부원들은 대체로 이제 본격적인 수험 준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들 저마다 공부로 고생하는 와중에 아라키타에게는 다른 의미의 봄이 찾아왔다.

  후쿠토미의 소꿉친구이자 자전거부 매니저였던 마키 카온. 인터하이가 끝나고 아라키타와 마키는 사귀기 시작했다. 아라키타는 ‘힘내라’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방관자들은 딱 질색이었지만 마키는 달랐다. 언제나 묵묵히 자전거부를 서포트했고, 부원들이 아무런 신경 쓰지 않고 부활동을 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키의 그런 모습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전날 두고 온 것이 신경 쓰여 평소보다 조금 일찍 부실에 갔을 때, 마키가 부원들이 있을 때보다 더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 아라키타가 마키에게 사정을 묻자 부원들이 롤러를 달리거나 할 때 집중을 깨지 않기 위해 대부분의 일은 부활동 전/후에 해둔다며 머쓱하니 웃었다.

  그 뒤부터 마키가 해 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조금 더 번거로웠을 것이라고,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그들은 한층 더 로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라키타는 그런 그녀에게 자꾸 눈이 가곤 했다. 인터하이가 끝날 때까진 집중을 흩트리는 일은 피하고 싶어 일부러 눈을 돌렸으나 그 후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은퇴 주행회를 마친 뒤 아라키타는 그녀에게 고백했고, 마키는 놀란 얼굴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첫 데이트. 어제는 어디서 들었는지 토도 녀석이 찾아왔다. 여자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느니, 어쩌느니 쫑알거리는 게 시끄럽기도 했고 언제나 부실에서 기다리는 마키를 봤을 뿐 본인이 기다려 본 적은 없단 생각에 오늘은 답지 않게 일찍 나왔다. 낮은 체지방 덕분에 감기가 잘 걸리는 체질이라 여러겹으로 단단히 껴입고 왔지만 역시 꽤 추운 날씨였다. 아라키타가 몸을 부르르 떤 순간 저 멀리에서 마키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라키타와 마찬가지로 평소와는 다르게 사복을 입은 마키가 경쾌한 걸음으로 걷다가 아라키타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에, 아라키타 군, 일찍 와 있었네. 늦어서 미안.”

  “뛸 거 없거든. 약속시간 아직 10분도 넘게 남았고.”


  아라키타는 퉁명스레 쏘아 붙이면서도 문득 묘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마키를 내려다보자 마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그래 아라키타 군?”하고 물었다. 그리고 아라키타는 거슬림의 원인을 깨달았다. ‘아라키타 군’ 갓 사귀기 시작한 두 사람은 아직 서로를 성으로 부르고 있었다. 거기까지라면 모를까 자신과는 달리 같은 중학교를 나온 후쿠쨩이나 신카이는 주이치, 하야토 군이라고 각각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소꿉친구인 후쿠쨩은 그렇다 치고 엄연히 따지면 중학교 때부터 같은 부 동료였을 뿐인 신카이가 이름으로 불리는데 남자 친구인 아라키타는 성에 군까지 붙여서. 신경에 거슬렸다.


  “....어, 음...... 추우니까 우선 영화관으로 가자.”


  이름으로 불러보려고 했지만 목을 간질이기만 할 뿐 튀어나오지 않는 이름에 아라키타는 금세 둘러댔다. 뭔가 미심쩍은 표정이었지만 마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자며 웃었다.



  약속장소인 시계탑에서부터 10분쯤 걷자 목표했던 영화관이 나왔다. 마키가 10분쯤 일찍 나온 덕에 시간적으로도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우선 티켓부터 발권을 받은 뒤 아라키타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야, 팝콘 먹을래?”

  “어? 응. 그러자.”


  이번에도 실패. 고개를 끄덕이며 매점으로 걸음을 옮기는 마키의 뒷모습을 보며 아라키타는 거칠게 머리를 헤집었다. 마키가 지갑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마키 쪽으로 갔을 때는 이미 계산을 마친 뒤였다.


  “영화는 아라키타 군이 예매했으니까.”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되는데.”


  그냥, 내가 먹고 싶었으니까. 마키는 웃으며 아라키타 몫의 콜라를 건네주었다. 마키의 손에 들려있는 팝콘도 제가 들겠다며 가져 온 아라키타는 상영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키도 금세 아라키타의 옆으로 다가와 함께 걸었다.



  영화는 꽤 재밌었다. 여자아이들 취향은 어떤 거네 하면서 토도가 목록을 주르륵 늘어놓았지만 마키에게 물었을 때 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마키가 보고 싶다고 한 영화는 제법 아라키타의 취향이었다. 아라키타의 취향에 마키가 맞춘 건지 우연히 취향이 겹친 건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아라키타는 본인이 마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이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 영화는 재밌었냐?”

  “응! 좋았어. 아라키타 군은?”


  이번에도 이름의 앞글자만 겨우 목 밖으로 나올까 말까 하다가 들어가 버렸다. 말을 돌려 영화에 대해 묻자 마키는 환하게 웃으며 영화에 대해 조잘조잘 얘기했다.

  영화 다음에는 저녁이었다. 예약해 둔 파스타 집은 괜찮았고, 마키는 즐거운 얼굴로 파스타를 먹었다. 아라키타는 조금 초조한 기분이 되었다. 이 뒤로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일 뿐인데 아직 말을 놓지 못했다. 그 때 마키의 입에 묻어있는 파스타 소스가 아라키타의 눈에 들어왔다.


  “...아, 어,..... 거기, 소스 묻었어.”


  또 실패. 아라키타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마키의 이름 ‘카온’이라는 이름이 계속 입 안에서 맴돌고 맴돌다가 결국은 목구멍 안으로 숨어버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답답한 것은 아라키타였다. 마키는 휴지로 입가를 닦고 이제 괜찮아? 하고 물었다. 아라키타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까지 다 먹은 두 사람은 기숙사로 걸음을 옮겼다. 해가 짧아진 덕에 꽤 어둑어둑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숙사까지 걸어가는 길이 어색했다. 언제나 자전거로 다니던 길이라 더더욱 그랬다. 전날 밤 전화해 절대로 약속 장소까지 로드를 타고 갈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신신당부 하는 토도 녀석 때문에 로드를 두고 나왔는데 이래서였구나, 라고 그제야 깨달았다. 로드를 타고 왔다면 마키와 같이 귀가하는 건 무리였을 테니까.


  두 사람이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는 휴게실만 공동으로 사용하고 입구부터 다르기 때문에 이 앞에서는 헤어져야 했다. 아라키타가 마키에게 내일 보자고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이었다.


  “내일 봐, 야스토모.”


  아라키타의 두 눈이 커졌다. 마키는 키득키득 웃었다. 종일 이름 부르려고 했던 거지? 계속 앞글자만 더듬더듬 말하는 게 귀여워서, 조금 장난쳐 버렸어. 카온, 으로 괜찮으니까. 마키는 상냥하게 말했다.


  “하, 그래. 내일 보자고 카온.”


  하루 종일 아라키타를 그렇게 괴롭히던 마키의 이름이, 지금의 그 한마디에 너무나도 쉽게 나와버려서 아라키타는 조금 허탈함을 느꼈다. 마키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야스토모.”


  쪼르르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는 마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라키타가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둡다는 점이,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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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데이트에 요비스테하려다가 실패한 아라키타!

아... 아라키타 귀여워... 좋아합니다. 


재업맨! 14년 연성쯤 오니까 문장이 좀... 눈에 밟히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네요 

그치만 수정하려고 하면 업로드 못할거 알기에< 적당히 올립니다 흑흑